EDITORIAL|LVIC x Artist

Haily h.

Living Canvas,
Living Dream

작가 함영이는 언제나 그리는 인간에 속해 왔다.
다만 그녀가 속한 세계에서 그는 특유한 장르의 존재다.

그녀에게 그리는 행위는 결론이 아니라 삶을 움직이게 하는 시작점이다.
그녀의 작업은 흐릿한 감정의 예술보다는 목적이 명료한 실험에 가깝다.
본래 움직임이란 더 안정된 상태를 향해 나아가는 자연스러운 성질이다.
빛을 따라 공간을 만들어 그 안에서 자신이 살아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작가의 모든 행위에도 그런 성질이 있다.

그리는 인간의 언어로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 함영이.
이른 아침부터 해거름까지 빛이 온전히 머무는 그녀의 작업실에서 그녀가 만들어낸 장르와 언어를 탐구했다.

Sand Beige Collection, Sand Beige no.01-14

Vanilla Spring Collection, Vanilla Spring no.01-10

White Sage Collection, White Sage no.01-14

@hailyhills

Q. 르비크가 협업 제의를 했을 때, 베키(Vecchi) 소파를 고르셔서 조금 놀랐어요. 리베오나 롱드같은, 로우백 디자인을 선호하실 줄 알았거든요.

로우백 디자인 소파를 오래 써 본 입장에서, 기능과 착석감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베키는 등받이가 적당히 높고, 포지션을 조절할 수 있어서 오래 앉아 있어도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겠더라고요. 로우백 소파도 나름의 매력이 있지만 푹 꺼지지 않고 균형감이 좋은 베키를 선택하게 됐어요. 물론, 스틸 프레임과 솔리테르 레더의 조화가 아름다운 리베오(Riveo)도 첫눈에 반할 만큼 아름다웠는데요. 공간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입장에선 베키처럼 기능을 충족하는 소파 또한 이토록 예쁘다는 걸 설득력 있게, 저만의 방식으로 알리고 싶었어요.

Q. 기존에 선보이시던 공간과는 무드가 조금 달라졌어요. 블랙 컬러 소파를 택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 공간은 제게 일종의 캔버스예요. 새로운 작품이 나오는 시기엔 관객을 초대하는 공간이 되고, 제가 꿈꾸는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다양한 기물을 두고 공간을 그리는 실험을 하는 작업실이기도 해요. 그래서 언제나 ‘여백’이라 생각 하고 유연하게 변화 해야 하는 공간인데요. 소파가 큰 면적을 차지하는 가구이니 만큼 어떤 스타일에도 조화로웠으면 했고, 무엇보다 오래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제품이길 바랐어요. 그런 면에서 블랙 컬러 가죽 소파가 유용하다고 생각했어요.

Q. 공간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가 뭘까요?

조명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공간의 면면에 다른 조명을 두는 편입니다. 그림을 비추는 스포트 라이트, 소파 곁에 두기 좋은 독서용 등, 대화를 이끌어 내는 조명… 각각의 조명엔 기능을 부여해요 . 근데, 사실 기능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이런 방식으로 공간을 연출했을 때 구현되는 입체감이에요. 공간을 그림 그리듯 본다면, 조명은 입체감을 만드는 붓 같아요. 조명마다 지닌 빛의 질감이 다르니, 공간에 명과 암이 생기는 결 또한 다르고 그게 공간을 한층 입체적으로 연출한다는 뜻이에요. 각각이 조명이 지닌 캐릭터에 따라 발하는 대비감이 공간에 다채로운 장면을 만듭니다. 오브제 자체로 의미있는 조명도 좋지만 저는 광원으로서 어떻게 기능하는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카리 램프처럼 빛이 종이를 투과하며 주변에 부드러운 무드를 더하고, 한 층 아름답게 구현하는 조명들을 좋아해요.

Q. 신작을 준비하신다고 들었어요.

아직 작업 중이라 조심스러워요. 다만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이번 작업의 중심에 ‘집’이 있다는 점이에요. 저는 그간 주제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언제나 모험을 해왔어요. 결국은 집으로 돌아오더라고요. 동화 <파랑새>처럼요. 이야기의 주인공은 행복을 찾아서 집을 떠나 여행을 떠나지만 결국 떠난 곳에서 여정을 마무리 하잖아요. 저 또한 내면에 집중하고, 내가 소망하는 비주얼에 집중하면서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번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기회가 있을 때 직접 나만의 집을 건축해보자”, “내가 원하는 공간을 선보이는 작업실을 만들자" “공간에 둘 수 있는 그림을 그리자"처럼 지금의 나를 만든 결심의 중심에는 결국, 공간에 대한 깊은 애착이 있었던 것 같더라고요. 이렇게 까지 너무 좋아하고, 즐기고, 심지어 꿈에도 나오는 이유는 뭘까 생각하게 됐죠. 이게... 좀 심한 것 같은 거예요. 이 정도면 집착 아닌가 싶을 정도로.(웃음). 그래서 준비 중인 신작은 결국 저와 제가 만든 공간에 대한 관찰과 성찰이에요.

Q. 공간에 대한 꿈을 꾸세요?

항상 나와요. 내가 원하는 공간에 대한, 그러니까 원하는 그림이 항상 꿈에 나와요. “이런 곳에 가고 싶다"고 느끼고 또 거기 당도해서 행복한 감정으로 꿈을 꿔요. 아주 어릴 때부터 같은 꿈을 꿨어요. 문을 사이에 두고 연속된 공간에 제가 있고. 언제나 거긴 집이고.

Q. 공간 스타일링 트렌드가 반영된 꿈인가요?

아니요. (웃음) 그런 건 아니예요. 제가 원하는 삶의 방향에 따라 꿈 속의 집에 새로운 문이 생기고, 그걸 열면 제가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공간이 나와요.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삶을 살고 싶은 시기에는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펼쳐지고, 오래 머물고 싶은 공간이 간절한 시기엔 그걸 반영한 공간이 나오고요. 제가 식물을 사랑하니까, 나무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시기엔 드넓은 마당에 나무가 잘 자라는... 그러니까, 하루를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에 따라 공간이 달라져요. 저 좀 이상해보이지 않나요? 마무리를 잘 안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읽힐 것 같은데 어쩌죠?

Q. 아니요? 부러워요. 원하는 공간을 미리 구현해 볼 수 있는 거 잖아요.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일도 없고요.

주로 계획적으로 공간을 만드는 편인데, 어떤 공간이건 결국은 빛이 달라지니까 다시 구획하게 돼요. 해가 어디서 어떻게 들고, 언제 지고. 그게 또 계절마다 다르니까요. 공간에 처음 들어간 시점에는 몰라요. 일단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관찰해야해요. 특정한 시간 대에 예상치 못한 조도와 깊이의 볕이 들어와서 공간이 따뜻한 색을 입을 수도 있고요. 주변 지형에 따라 예상치 못한 빛이 공간에 맺히기도 하고요. 아무리 예쁘게 공간을 꾸며도, 그 어떤 고급스러운 기물을 가져다놔도 빛과 어울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는 때도 있더라고요. 1년 정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공간은 빛을 따라 계속 바뀌니까, 결국은 내가 의도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갈 때도 많죠.

For me, making something new just feels
natural. I really admire people who stick with
one thing. I just don’t work that way. If I stay in
one place too long, my energy drops. I’m better
at beginnings. Trying new things keeps me going.
It’s how I stay excited about my work.

Q. 이 작업실에서 2년을 보내셨다고 했죠. 작가님이 이해한 공간과 현재의 모습은 꿈에 얼마나 가까워요?

이 공간은 남향이라, 저기 그림이 걸린 공간을 위주로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해가 잘 들어요. 가장 예쁜 때는 석양이 지는 때고요. 저기 창문 끝으로 해가 지니까, 손님을 초대해서 저녁 식사를 같이 할 일이 있으면 약속 시간을 일찍 잡아요. 다같이 석양을 감상하는 게 일종의 코스인 거죠. 아침에도 좋은 빛이 드는데, 저는 따뜻한 석양을 바라보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꿈에 가까워요. 르비크의 소파가 들어오고 나서 조금 더 중심 잡힌 공간이 됐다고 생각하고요.

Q. 앞선 세가지 질문에서 다 얘기했어요. 이제 소파 얘기 안하셔도 괜찮아요. 정말이에요.

아니, 정말요. 소파는 진짜 중요한 것 같아요. (웃음) 저는 집을 이루는 공간 중에서도 거실을 주요하게 소개하고 있어요. 그림으로 공간의 무드를 설정하고 나면, 소파 위치를 정해요. 소파는 이 공간에서 가장 큰 위치를 점하고, 가장 오랜 시간을 머무는 가구일 수 밖에 없어요. 소파 위치를 정하면, 그를 위주로 다른 기물의 위치를 정하게 돼요. 조명, 소품, 패브릭은 자주 변하더라도 소파는 무게를 지니고 중심을 만드는 역할을 하는 게 확실해요.

Q. 몇 년 전만 해도 집에 그림을 두는 문화가 지금처럼 대중적이지 않았어요. 함영이는 그 흐름을 만든 작가로 평가받기도 하는데요. 레퍼런스가 거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자신만의 색을 찾았나요?

분명한 변곡점이 있었어요. 2021년 ‘바닐라 스프링’ 시리즈 때였죠. 반려견 우디를 떠나보내고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시기였는데, 마음을 붙들기 위해 다시 그림을 그렸어요. 색과 형태에 집중하며 스스로를 위로하려 했던 시간이었어요. 그전엔 예쁜 걸 그리고 싶었어요. “집에 잘 어울려요” 같은 피드백이 대부분이었고, 그 말이 좋았죠. 그런데 그 시기 이후엔 “그림에서 위로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팬데믹이기도 했고, 저처럼 상실을 겪은 분들도 많았고요. 그 말들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그림이 공간을 꾸미는 걸 넘어서 마음을 건넬 수도 있다는 걸요. 그래서 지금은 제가 어떤 마음으로 그리는지가 더 중요해졌어요. 우디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Q. 감정과 경험이 지금의 작업을 만들었다고 하셨는데요. 처음부터 지금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신 건가요? 여기까지 오기까지 어떤 여정이 있었나요?

사실 평생 뭔가를 시작하는 사람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학부 때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아트를 국내에서 거의 처음 시도하시는 교수님께 사사받듯 공부했어요. 기술과 예술이 막 결합되던 시기였고, C언어 책 들고 다니며 코딩하고 프로그래밍하며 미디어 아트를 했죠. 친구들이 “너는 왜 시각디자인 전공생이 C언어 책 들고 다니냐” 할 정도로요. (웃음) 졸업하고도 개발자와 함께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미디어 아트, 광고를 섞어보는 실험을 했어요. 스마트폰이 막 등장할 때라 앞으로의 감각을 만드는 일이 흥미로웠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기술을 잠시 내려놓고 오롯이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작가의 길을 택했지만, 결국 다시 공간 안에서 그림의 의미를 고민하게 됐고요. 지금은 그림을 통해 공간과 일상, 감정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으로 저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Q. 최근 러그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신다고 들었어요.

네, 완전히 자체 브랜드예요. 협업이 아니라. 인도에 있는 전통 있는 러그 공방과 함께 만들고 있어요. 그 전에도 패브릭 전문 브랜드와 협업해 러그를 만들어본 적은 있었지만 사실상 새로운 처음이죠. 이번엔 온전히 제가 설계하고 기획한 브랜드라고 할 수 있어요.

Q. 고통을 즐기시는 편인가요?

(웃음) 그런가 봐요. 그렇게밖에 못 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방식이에요. 저는 한가지를 오래 하는 사람들을 정말 존경해요. 저는 그걸 잘 못 하니까요. 하나를 너무 오래 하면 어느 순간 에너지가 고갈돼요. 한가지를 오래 하는 걸 잘 못하고, 시작하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잘하는 게 도전이라, 잘하는 걸 하려다보니 자꾸 새로운 걸 시도합니다. 그래야 다시 에너지가 생겨요. 새로운 도전이 저한테는 충전의 방식이고 원동력이에요.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요?

패션 브랜드랑 협업하고 싶어요. 그림을 텍스타일로 옮겨서 옷으로 표현하는 거요. 패브릭 작업에서 일상에 유용한 러그로, 또 러그에서 패션 아이템으로 장르를 뛰어넘어보는 게 저의 새로운 꿈이에요.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어요.

Q. ‘아웃 오브 장르(OUT OF GENRE)’ 캠페인에 참여하시면서 느낀 점은요?

“장르에서 벗어난다”는 말이 정말 와닿았어요. 저는 평생 그렇게 살아온 것 같거든요. 시각디자인 전공자가 미디어 아트를 하고, 그게 공간으로, 패브릭으로, 러그로 이어지고. 결국 하나로 묶이면 ‘아웃 오브 장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나를 빨리 소모시키는 방식이긴 해요. 그런데도 계속 하게 돼요. 불나방 같아요. 언젠가 그만두겠지, 하면서도 계속. 아마 살아 있는 동안은 그렇게 살 것 같아요.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Q. 마지막으로, 작가님에게 ‘공간’이란?

나 자신이에요.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계절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가 결국 나를 보여주는 방식이에요. 공간은 제 영감의 원천이자 제 얼굴이에요.

Photographed by
Yeon-jae Kim

함영이

 Haily H.로 활동하는 작가 함영이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그래픽 디자이너와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며 시각 언어와 공간 표현의 경계를 탐구해왔다. 그녀의 작업은 회화에서 출발해 오브제와 텍스타일일, 조명 디자인 등 공간의 조화를 만드는 기물까지도 이어진다. 그녀만의 예술 세계를 기반으로 한 브랜드 하일리힐즈(Haily Hills)를 운영하며, 예술이 일상 속에서 생동하는 방식을 지속적으로 실험하고 있다.